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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
박준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손과 밤의 끝에서는
박준
까닭 없이 손끝이
상하는 날이 이어졌다
책장을 넘기다
손을 베인 미인은
아픈데 가렵다고 말했고
나는 가렵고 아프겠다고 말했다
여름빛에 소홀했으므로
우리들의 얼굴이 검어지고 있었다
어렵게 새벽이 오면
내어주지 않던 서로의 곁을 비집고 들어가
쪽잠에 들기도 했다
천변 아이
박준
게들은 내장부터 차가워진다
마을에서는 잡은 게를 바로 먹지 않고
맑은 물에 가둬 먹이를 주어가며
닷새며 열흘을 더 길러 살을 불린다
아이는 심부름길에 몰래
게를 꺼내 강물에 풀어준다
찬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에 가는 한밤에도
낮에 마주친 게들이 떠올라
한두 마리 더 집어 들고 강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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