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詩

윤동주 시 모음 / 쉽게 씌어진 시, 서시, 별 헤는 밤

포에리 2023. 5. 2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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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운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그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봄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영화 <동주>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자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단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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